혹시 아직도 이 영화 안 보신 분 계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한국 느와르의 정점, 아니 '수컷 냄새' 진동하는 찐한 멜로(?) 한 편을 놓치고 계신 겁니다. (진지)
"어이, 브라더! 밥은 먹었냐?"
이 대사 한 줄만 읊어도 소주 한 병 뚝딱이라는 전설의 명작. 2013년에 개봉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후속작 언제 나오냐고 감독님 바짓가랑이 잡게 만드는 영화. 오늘은 피 비린내 속에 피어난 의리와 배신, 그리고 선택에 대한 이야기 <신세계 (New World)>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보겠습니다. 드루와, 드루와!
[영화 리뷰] 신세계: 갈 때는 가더라도 담배 한 대 정도는 괜찮잖아?
세 남자가 꿈꾸는 서로 다른 신세계, 그 잔혹한 기록
1. 줄거리: 깡패보다 더한 경찰, 경찰 같은 깡패
국내 최대 범죄 조직 '골드문'의 회장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급사합니다. 왕좌가 비자, 조직 내 2인자 그룹인 정청(황정민)과 이중구(박성웅) 사이에는 살벌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죠. 경찰청 수사 기획과 강 과장(최민식)은 이 기회에 조직을 아예 집어삼키거나 통제하려는 작전명 '신세계'를 설계합니다.
이 작전의 핵심 말(Chess piece)은 바로 이자성(이정재). 그는 8년 전 강 과장의 지시로 조직에 잠입한 언더커버 경찰입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조직 생활을 한 탓일까요? 아니면 정청의 무식하지만 뜨거운 형제애 때문일까요? 자성은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신을 장기판의 말로만 취급하는 경찰 조직에 회의감을 느낍니다.
정청은 자성을 친동생처럼 아끼며 "브라더"라 부르지만, 강 과장은 자성의 목줄을 쥐고 더 깊은 늪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칼춤을 추며 날뛰는 이중구까지. 서로 속고 속이는 아수라장 속에서, 자성은 결국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과연 그가 선택한 '신세계'는 어디였을까요?
2. 총평: 이것은 느와르를 가장한 슬픈 '러브레터'다 (★★★★★)
■ 황정민이 황정민 했다 (feat. 짝퉁 롤렉스)
이 영화의 MVP는 단연 '정청' 역의 황정민입니다. 공항 슬리퍼 질질 끌고 등장해서 "어이 브라더~" 할 때의 그 양아치스러움이란... ㅋㅋ 근데 그 가벼움 뒤에 숨겨진 서늘한 카리스마가 진짜 무섭습니다. 특히 창고 씬에서 삽 들고 설칠 때의 광기는 잊을 수가 없죠. 하지만 정청이 진정 빛나는 건 '의리' 때문입니다. 자성이 경찰(쁘락치)인 걸 알았으면서도, 그를 제거하는 대신 끝까지 안고 가는 그 마음. 엘리베이터 씬 이후 산소호흡기 달고 자성에게 남긴 "독하게 굴어... 그래야 네가 살아..."라는 유언은, 단순한 조폭 영화를 넘어선 진한 페이소스를 남깁니다.
■ 이정재의 '얼굴'이 서사다
이정재 배우는 영화 내내 대사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눈동자, 항상 땀에 젖어 있는 창백한 얼굴, 담배 연기를 내뿜는 한숨만으로 이자성의 불안한 내면을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초반의 불안해하던 눈빛이 후반부 회장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았을 때의 그 텅 빈, 하지만 단단해진 눈빛으로 변하는 과정. 그 변화 자체가 이 영화의 주제입니다. (수트빨은 덤이고요. 진짜 수트 박제해야 함.)
■ 한국형 느와르의 완성
<무간도>의 아류작 아니냐는 초반 우려를 완벽하게 날려버렸습니다. 무간도가 정체성의 혼란에 집중했다면, 신세계는 '관계'와 '선택'에 집중합니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상에서, 법(경찰)은 나를 이용하려 들고 악(조폭)은 나를 믿어줍니다. 아이러니하죠. 결국 "누가 내 편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자성은 자신을 믿어준 사람의 길을 선택합니다. 마지막 6년 전 여수 시절 회상 씬에서 해맑게 웃던 두 사람의 모습이 나오면, 진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3. 시청 반응: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이 영화, 남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종교입니다.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대사 외우기 대회가 열린 수준입니다.
▶ "드루와! 드루와!" (유행어 제조기)
엘리베이터 액션 씬은 한국 영화 액션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힙니다. 좁은 공간에서 칼부림이 난무하는 와중에 황정민이 외친 "드루와"는 수많은 예능과 일상생활에서 패러디되었죠. "이거 방탄유리야 개XX야!" 같은 찰진 욕설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박성웅의 재발견, 살려는 드릴게"
이중구 역의 박성웅 배우는 이 영화로 인생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위압적인 피지컬과 서늘한 눈빛, 그리고 "살려는 드릴게",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같은 명대사들은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섹시함을 발산했죠. 당시 관객들은 "저 아저씨 진짜 조폭 섭외한 거 아니냐"며 수군거렸을 정도입니다.
▶ "감독님, 제발 프리퀄 좀..." (신세계 2 존버단)
개봉 후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팬들은 '신세계 2' 혹은 '프리퀄(여수 시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입니다. 감독님이 시나리오는 있다고 했는데... 배우들 몸값이 너무 올라서 힘들다는 슬픈 전설이... 그래도 우리는 기다립니다. 정청과 자성이 여수 바닥을 휩쓸던 그 시절을 보고 싶으니까요.
[마무리 썰]
<신세계>는 단순히 깡패들끼리 칼부림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믿었던 조직(경찰)에 배신당하고, 오히려 적(깡패)에게 위로받은 한 남자의 쓸쓸한 성장기입니다. 오늘 밤, 깡소주 한 잔 옆에 끼고 이 영화 다시 한번 정주행 어떠신가요? 마지막 장면에서 자성의 미소를 볼 때, 여러분도 모르게 담배 한 대(비흡연자라면 초코파이 하나)가 간절해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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